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 램지 (문단 편집) =====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1966년 월드컵]] ===== 월드컵에서의 연이은 실패에 이어 유러피언 네이션스컵에서도 예선 탈락을 해 버렸으니, 축구종가의 자존심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젠 정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선수진은 [[바비 찰튼|찰튼]] [[잭 찰튼|형제]]와 [[바비 무어]], [[고든 뱅크스]] 등 자신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를 다투는 선수들로 구성되었기에 객관적으로 봐도 유럽 무대에서 통할 수준이었지만 딱 한 포지션이 영 부실했다. 그게 바로 윙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전설의 윙어 [[스탠리 매튜스]]와 [[톰 피니]]를 이을 만한 재능들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뛰어난 선수가 존 코넬리 뿐이었다. 그래서 램지는 고민 끝에 자신이 입스위치에서 쏠쏠하게 써먹었던 '윙어가 없는' 포메이션을 대표팀에도 적용했다. 어느 포지션에 배치되더라도 필드의 전체를 누비는 바비 찰튼을 기존의 왼쪽 윙어 자리에서 중앙 미드필드로 옮겼고, 좌우 풀백인 레이 윌슨과 조지 코헨이 윙어처럼 공격에 가담하도록 전술을 짰다. 측면으로 향하는 롱패스보다는 중앙에서의 허리 싸움을 강조하는 전술이었다. 이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존의 윙어 대신 [[마틴 피터스]]와 같은 중앙 미드필더를 중용하였다. 예선 우루과이전에서는 4-3-3을 사용하여 존 코넬리를 윙어로 쓰고 스트라이커 지미 그리브스와 로저 헌트를 동시에 기용하는 변칙적인 전술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빈 공간이 생기는 오른쪽 진영은 [[앨런 볼]]이 미드필더와 윙어의 역할을 겸하면서 훌륭하게 메웠다. 노비 스타일스와 바비 찰튼이 수비 가담을 열심히 해 주었고 그 덕에 바비 무어&잭 찰튼의 센터백 콤비는 엄청나게 공격가담을 자주 할 수 있었다. 우루과이전에서는 0:0으로 비기면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남은 두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조 1위로 예선전을 통과하였다. 8강전의 상대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여기에서는 4-4-2로 윙어를 두지 않고 중앙 미드필더를 3명을 두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의 퇴장으로 인해 잉글랜드는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갔고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전의 상대는 이변의 주인공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 포르투갈은 [[에우제비우]]가 버티고 있었다. 그를 막기 위해 [[노비 스타일스]]를 보냈고, 이 결정은 성공을 거두었다. 에우제비우를 [[페널티 킥]] 골 하나로 막는데 성공하였고, 잉글랜드는 결승에 진출하였다. 종가의 심장에서 [[FIFA 월드컵 트로피|쥘 리메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 남은 시합은 단 한 번. 그리고 그 상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앙금이 많이 남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이었다. 이 시합에서 연장혈투 끝에 [[제프 허스트]]의 [[해트트릭]]으로 4-2 승리를 거두었다. 알프 램지는 이 우승으로 잉글랜드 전체에 명성을 드높였고, 1967년 월드컵 우승의 공로로 기사작위(Knight Bachelor)에 서임되었다.[* 이 우승 하나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 보다 높은 등급의 기사작위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